
요리 영화가 보여주는 맛있는 장면은 관객에게 시각적 만족을 주지만, 실제 셰프들이 이 장르를 바라보는 시선은 전혀 다릅니다. 셰프들은 요리 장면의 리얼리티, 주방의 구조, 긴장감, 협업, 그리고 음식에 담긴 철학까지 세심하게 관찰합니다. 단순히 ‘음식이 먹음직스럽게 보이는가’가 아니라 ‘실제 조리현장처럼 느껴지는가’, ‘요리에 대한 태도가 진정성 있는가’에 더 집중하는 것이죠. 이번 글에서는 셰프들이 실제로 높게 평가하거나 감명 깊게 본 영화와 다큐멘터리를 중심으로, 요리 현업자의 시선에서 분석해 봅니다. 흔히 언급되는 《셰프》, 《줄리 & 줄리아》, 《라따뚜이》 외의 작품들로 구성하여, 보다 신선하고 깊이 있는 셰프들의 시각을 담았습니다.
《더 베어》(The Bear) – 셰프 세계의 현실을 직격한 드라마 시리즈
요리 업계에서 가장 많이 회자된 작품 중 하나는 영화가 아닌 드라마 시리즈인 《더 베어》(The Bear, FX, 2022~)입니다. 이 시리즈는 미슐랭 스타 셰프 출신인 주인공 카민이 가족이 남긴 허름한 샌드위치 가게를 운영하며 겪는 현실적 고군분투를 그립니다. 셰프들 사이에서 이 시리즈가 특히 화제가 된 이유는, ‘진짜 주방’을 그대로 가져다 놓은 듯한 생생한 연출 때문입니다. 매 에피소드가 긴박감 넘치는 서비스 시간, 위계가 명확한 주방 내 소통 체계, 손 하나 잘못 댔을 때 터지는 갈등, 서로의 호흡을 이해하지 못해 발생하는 일들이 고스란히 담겨 있습니다. 셰프들이 특히 극찬한 부분은 ‘감정’의 디테일입니다. 주방은 단순한 노동의 현장이 아닙니다. 각자 다른 배경을 가진 사람들이 빡빡한 시간 안에 완벽한 결과를 내기 위해 한 공간에서 충돌하고 협업하는 곳입니다. 《더 베어》는 이 복합적인 감정선—자존심, 열정, 스트레스, 상실감, 그리고 자기 회복—을 요리를 중심에 두고 풀어냅니다. 많은 셰프들이 “실제 서비스 전 날 느끼는 압박감이 화면 그대로 전해졌다”거나, “에피소드 7의 롱테이크는 실제 주방보다 더 숨 막혔다”는 평가를 남겼습니다. 또한, 인물들의 관계가 요리라는 작업을 통해 어떻게 변해가는지를 정교하게 풀어낸 점도 셰프들에게 깊은 공감을 이끌어냈습니다. 이 작품은 단순한 요리 드라마가 아니라, 셰프들의 내면과 현장의 다층적인 현실을 가장 리얼하게 담아낸 현대적 요리 작품입니다.
《지로의 꿈》(Jiro Dreams of Sushi) – 완벽주의와 장인정신의 정수
2011년 공개된 다큐멘터리 《지로의 꿈》(Jiro Dreams of Sushi)은 미슐랭 3스타 초밥 장인 오노 지로의 삶과 철학을 조명한 작품으로, 전 세계 수많은 셰프들이 “가장 존경하는 요리 다큐”로 꼽는 영화입니다. 이 작품은 초밥이라는 장르를 넘어서, 한 사람의 삶을 ‘요리’라는 한 줄기로 일관되게 살아낸 장인의 철학을 보여줍니다. 셰프들이 이 다큐를 깊이 감동적으로 보는 이유는, 요리라는 것이 단순한 기술이 아니라 ‘일생을 걸고 단련하는 도(道)’가 될 수 있음을 보여주기 때문입니다. 영화 속 지로는 하루도 빠짐없이 똑같은 시간에 출근하고, 똑같은 방식으로 손을 씻고, 초밥을 쥡니다. 그의 말 한마디 한마디에는 ‘장인정신’이라는 단어가 진부하지 않을 정도의 무게가 담겨 있습니다. 셰프들이 특히 주목한 부분은 지로가 말하는 ‘완벽이란 없다’는 태도입니다. 수십 년을 초밥 하나에만 몰두했지만 그는 매일같이 “더 나은 한 점”을 고민합니다. 이것은 단지 일본 전통 요리에 국한된 철학이 아니라, 모든 셰프들에게 해당되는 이야기입니다. 수많은 셰프들이 이 다큐를 본 후 “초심으로 돌아가게 됐다”거나, “정성이라는 단어가 얼마나 무거운지 깨달았다”는 소감을 밝히기도 했습니다. 촬영 기법 역시 요리의 철학을 정적으로 표현하는 데 집중되어 있습니다. 장인의 손놀림을 클로즈업으로 담되, 과도한 카메라 움직임 없이 수묵화처럼 담담하게 초밥이 놓이는 순간을 포착합니다. 음악 또한 요란하지 않고, 단순하고 명상적인 클래식이 배경이 되어 음식에 대한 집중력을 높입니다. 《지로의 꿈》은 셰프들에게 있어 ‘기술’보다 앞서는 ‘정신’을 일깨우는 작품으로 자리 잡았으며, 단 하나의 요리에 평생을 바친다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를 상기시켜 줍니다.
《더 갓 오브 라멘》(The God of Ramen) – 음식 뒤에 숨겨진 인간의 삶
2013년 공개된 일본 다큐멘터리 《더 갓 오브 라멘》(The God of Ramen)은 ‘이치란’ 체인과는 다르게 도쿄에 있는 유명 라멘 가게의 전설적인 셰프 카즈오 야마구시의 13년에 걸친 삶을 조명합니다. 이 영화는 라멘이라는 대중적 음식이 한 사람의 인생 전체를 어떻게 지배하고, 또 반대로 한 사람이 음식에 어떤 흔적을 남길 수 있는지를 기록합니다. 셰프들이 이 영화를 높게 평가한 이유는, ‘성공한 요리사의 삶’이 화려한 요리 장면이 아니라 인간적인 고통과 소명감 위에 쌓였음을 보여주기 때문입니다. 야마구시는 하루 수백 명의 손님을 상대하면서도, 단 한 그릇의 라멘도 허투루 만들지 않습니다. 라멘을 끓이기 위한 국물은 새벽 4시부터 우려내고, 재료 하나하나에 손수 정성을 들입니다. 하지만 영화 중반, 그가 병에 걸리며 주방을 내려놓는 과정은 셰프들에게 매우 현실적인 슬픔으로 다가옵니다. 많은 요리사들이 이 장면에서 “내 몸이 무너졌을 때, 내 가게는 어떻게 되는가”라는 현실적인 질문과 마주하게 됩니다. 셰프가 아닌 사람들에게는 단지 ‘열심히 일한 장인의 이야기’처럼 보일 수 있지만, 주방이라는 공간에서 매일을 보내는 셰프들에게는 한 사람의 ‘삶의 방식’이 투영된 미묘한 감정이 파고듭니다. 이 영화는 요리에 대한 기술적 묘사보다, 음식이 가진 정서적 무게, 그리고 요리를 통해 사람과 사람을 이어주는 과정에 더 집중합니다. 인터뷰 형식, 일상적 촬영, 다큐멘터리 특유의 내레이션 없이 담담한 전개는 오히려 음식에 대한 집중도를 높이고, 관객이 그 삶을 직접 느끼게 만듭니다. 《더 갓 오브 라멘》은 셰프라는 직업이 단지 맛있는 음식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어떻게 살 것인가’를 고민하는 철학의 영역임을 보여주는 작품으로, 요리사의 삶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만드는 영화입니다. 화려하거나 유명하지 않아도, 실제 셰프들이 감동하고, 존경하고, 되새기는 영화들이 있습니다. 《더 베어》는 요리 현장의 생생한 리얼리즘을, 《지로의 꿈》은 장인정신을, 《더 갓 오브 라멘》은 요리를 통한 삶의 무게를 각각 보여주며, 셰프들의 삶과 철학을 깊이 있게 담아냅니다. 음식은 눈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철학으로 느끼는 것. 셰프들이 사랑한 이 영화들을 통해 요리의 본질에 더 가까이 다가가보시길 바랍니다.